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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축제」, 「학생부군신위」에 나타난 가족 레질리언스 발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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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근무 작성일18-09-12 16:10 조회3,3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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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연구와 사람4:

영화 「축제」, 「학생부군신위」에 나타난

가족 레질리언스 발현의 조건

글쓴이: 이근무(HA연구소장)  

 

 

 

레질리언스는 마치 발아되지 않은 씨앗과 같은 것으로서 적절한 온도와 수분, 햇볕같은 조건이 있어야만 합니다. 가족학 연구자들은 물론 다양한 학제의 연구자들은 가족 레질리언스(family resilience)에 주목했고 이는 일종의 신경(信經)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가족 레질리언스를 역경이나 한계상황에 처한 가족구성원들이 과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장으로 이끄는 힘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그 신비한 힘을 만드는 조건에 대해서는 명증한 이야기를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는 레질리언스는 결과가 아닌 과정 그리고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만든 「축제」(1996),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1996)에 나타난 가족의 신비한 힘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독이 1997년의 IMF를 염두에 두지 않았겠지만 두 영화가 IMF 경제위기가 불거지기 1년 전에 개봉했다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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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축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사유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소설가인 주인공(안성기)이 어머니의 부음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지금의 현대식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에 한 번이라도 참석한 사람들은 알 수 있듯이 장례식은 장례절차 또는 상속문제 등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갈등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엄숙함보다는 난장판에 가깝습니다. 죽은 자를 빌미로 하여 그간의 억눌린 감정을 풀어 헤칩니다. 상주보다 더 크게 더 애절하게 통곡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축제” 역시 이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주인공의 가족들도 망자에 대한 애도보다는 자기의 이익 챙기기에 바쁩니다. 취직청탁이 오가고 문상객들은 술이 한껏 오르자 노래가락까지 불러 제칩니다. 말썽꾸러기 딸(오정해)은 오래전 집을 나가 부모의 속을 새까맣게 태운 잘못도 잊은 채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주인공을 원망합니다. 하지만 준섭이 쓴 동화를 읽고 눈물을 흘립니다. 자기의 어머니를 소재로 쓴 동화는 손녀에게 자기의 나이를 나누어 주고 종국에는 손녀보다 작아져 한 마리 나비로 날아가는 노인의 소멸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철없는 딸은 동화를 읽고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하지만 필자는 가족의 힘은 용서와 화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결국 모든 가족이 웃는 화해의 가족사진으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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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도 임감독의 축제의 내용과 메시지가 유사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갑자기 사망한 한 노인의 장례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막내딸 역시 철없는 여인으로 그려지고 노인의 여동생은 오빠의 장례 중에도 보험세일에 열을 올립니다. 제가 감독이었다면 의례적 조문만 하고 명함을 돌리는 정치인을 등장시켰을 것입니다. 재미교포인 차남(주진모)은 유교식 장례를 거부하고 찬송가를 부릅니다. 노인의 장례식장에는 단골로 드나들었던 다방마담과 아가씨들이 커피를 들고 나타납니다. 점입가경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코메디영화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역시 가족의 화해입니다. 가족사진에는 어린 아이가 등장합니다. 장례식 내내 굴렁쇠를 굴리던 아이입니다. 상복을 입지도 않았고 장례식 참여도 가능하지 않은 국외자입니다. 추측컨데 소위 "개구멍받이"로 노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당연히 아이의 배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대열에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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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단편소설, 영화는 유독 가족에 집착합니다.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서 가족을 다루는 척 하다가 결국은 가족의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 불가사의한 카리스마의 수애가 주연한 “가족”(2004), “님은 먼 곳에”(2008) 등이 그러합니다.


가족의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에 불편한 감정을 지닌 이들도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앞세워 자행되는 끔찍한 지옥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보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사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가족을 어설픈 과학과 사조로 재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필자는 가족 그리고 용서와 화해는 과학적 언어보다 뛰어난 메타언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요즈음 가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흔들리는 가족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필자는 가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해체되건 유지되건 용서와 화해는 가족 레질리언스의 가능, 발아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역기능적인 가족, 파편화된 가족들이 용서와 화해라는 실존차원의 자원을 확보해가는 과정과 내용, 그리고 맥락적 조건은 물론 화해와 용서의 의미 등에 대한 질적연구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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