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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노인들의 메타 목소리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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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근무 조회8,5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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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연구의 주제와 방법 39

제목광장에 선 노인들의 메타 목소리에 대한 연구

글쓴이질적연구HA연구소장 이근무

 

지난 10월 초순 제가 자주 가는 노포(老鋪)에 갔습니다. 00반점이라는 상호가 말해주듯 50여 성상을 한 곳에서 버틴 중국음식점입니다. 70대의 노인 주방장이 아직도 프라이팬을 돌리고 있고 역시 70대 할머니가 캐셔 겸 서빙을 맡고 있었습니다. 의자들은 짝이 맞지않고 낡은 식탁에는 비닐커버가 식탁보를 대신하여 덮여있지만 짜장면만큼은 남은 짜장소스를 혀로 핥아먹을 정도로 풍미가 있습니다.

 

가게에는 할아버지는 없고 할머니만 있었습니다. 명절에도 문을 여는 집이라 궁금했습니다. 할머니는 영감이 광화문에 가서 모처럼 쉰다고 신이 나 있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갔을 때 노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노인은 타짜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니가 한 말을 응용하여 젊은 놈들이 늙은이들을 빙다리 핫바지로 안다며 분개했습니다. 노인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심봉사 한양 나들이 가듯 물어물어 찾아간 현장은 모 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는 광화문 집회였다고 합니다. 연령 차별적 요소가 다분하고 정치적 편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아스팔트 위에서의 투쟁은 진보와 청년세대의 전유물이고 노인세대나 보수성향의 개인들은 광장민주주의(Agora Democrcy)와는 무관한 인구계층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그 험한 데를 왜 가냐고 묻자 주방장 노인은 우리 동네 노인들이 많이 갔다고 되받아쳤습니다. 노인의 대답은 둔기가 아니라 날카로운 예기가 되어 저의 머리에 꽂혔습니다. 반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정치와는 무관한 무정치적 존재, 더 나아가 성적인 정체성이 결여된 무성적 존재로 치부해 왔는가? 단지 표현의 장이 없었고 기회가 박탈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지녔기에 일베노인으로 폄하하지는 않았는가? 광화문 집회, 서초동 집회에는 200~300만명이 운집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찌보면 양 진영의 메갈로마니아(Megalomania)에 기인한 과대포장 전술일 수 있지만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노인들이 모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과연 주방장 노인처럼 짜장면을 하늘로 알고 자기의 자랑으로 아는 노인도 일베노인인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인들이 종묘공원이 아닌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는가? 노인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노인에게 광장으로 간 이유를 묻자 대답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우리 늙은이들은 인터넷이고 그런 것 못해라고 했습니다. 사이버민주주의 시대에 댓글을 달 수 도 없었기에 오프라인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로 해석했습니다. 광화문 집회뿐만 아니라 서초동 집회에도 많은 노인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 많은 노인들이 모두 강남좌파, 진보적 노인들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노인들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이고 그 곳에서 무엇을 체험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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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집회, 서초동 집회 (사진출처:중앙일보)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시작되었고 결실을 맺었습니다. 일본의 문예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독려처럼 민주주의는 투표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데모로 완성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4.19혁명에서부터 전 대통령 탄핵까지 모두 광장에서 시작했고 거기서 명예혁명을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서초동, 광화문 집회 이후 영향력있는 식자들로부터 광장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광장민주주의는 파당적 광장정치로 변질되었고 파시즘적 표현이라는 말과 함께 광장과 광장이 충돌하여 지옥의 문이 열렸다는 비관의 묵시록도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광장에서 생산되는 담론들에 대해 분노조절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막말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광장비관론자들은 광장을 정치모리배들의 대중선동의 장, 유투버들이 날조한 가짜뉴스가 전파, 증폭되는 왜곡과 거짓의 장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복마전같은 광장을 거리의 의회로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고대 아테네의 토론민주주의, 하버마스(Habermas)가 거론한 부루주아 공론장(Offentlichkeit)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양자 모두 법치주의, 평화로운 토론과 소통, 자유, 공공성과 같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회는 시민권을 가진 덕성있는 사람들만의 독무대였고 하버마스가 주장한 부루주아 공론장 역시 지식과 재산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교양을 가진 중산층 엘리트들의 무대였습니다. 성적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는 물론 비주체화된 노인들에게는 금단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광장은 노인들에게는 현대판 신문고이자 정치적 마당놀이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투표권만 있는 경로당 노인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되는 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초동, 광화문 집회와 진보, 보수를 막론한 노인들의 참여경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노인들은 주방장 노인의 표현처럼 인터넷도 서툴고 댓글로 의사를 표현하기도 힘들고 유투버가 되기도 아렵습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전 대통령 탄핵찬성, 반대 집회는 물론 서초동, 광화문 집회, 보수, 진보 진영 집회 참여자들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참여동기는 정치적 뒷방노인 취급에 대한 반발, 자신이 지켜온 가치의 실천, 노년의 경륜과 지혜가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는 바램 등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 보수는 교차점이 없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광장과 노인이라는 공간과 주체의 차원에서 통합하면 광장에 선 노인들의 메타 정치의식, 욕망, 사회에 대한 기대 등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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