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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연구와 사람7:

삶의 서사(narrative)가 담긴 「집」에 대한 연구

글쓴이: 이근무(질적연구HA연구소장) 

 

  얼마 전 종로구 소재 모 고시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일곱 명이 사망하는 가슴저미는 일이 있었습니다. 명색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하늘 밑에서 주거난민으로 표류하다 한 줌의 재로 삶을 마감한 고인들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 개울가 모래둔치에서 자주 두꺼비집놀이를 했습니다. 두꺼비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모래 바닥을 우묵하게 판 후 주먹을 그 안에 넣고 물기를 머금은 모래를 쌓아 토닥토닥 두드립니다. 모래가 단단해지면 손을 빼는데 모래가 무너지지 않으면 굴이 생기고 우리는 그것을 내집으로 불렀습니다. 두꺼비집 놀이를 할 때는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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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집지어라

소가 밟아도 딴딴 까치가 밟아도 딴딴

 

  이처럼 어릴 때는 집짓기가 모래유희였는데 성인이 되자 힘겨운 삶의 과업이 되었습니다. 34평 아파트 한 채를 위해 행복과 꿈을 저당잡히고 온 가족의 에너지가 핍진될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는 두꺼비 노래를 바꿔불러야 할 지도 모릅니다.

 

두껍아 두껍아 내 청춘 줄게 아파트 다오

 

  청춘을 바친 대가로 얻은 아파트나 빌라는 어찌 보면 아서 밀러(Miller, A)어느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의 비극적 결말과도 유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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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 동안 세일즈 맨으로 일한 주인공 로만(Loman)은 그의 이름처럼 낮은 사람(Low man)이고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들과 갈등을 빚은 후 가족들에게 2만 달러의 보험금을 남겨주기 위해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스스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2만 달러로 남은 사나이가 죽은 날은 25년간이나 불입한 주택할부금 납부가 끝나는 날입니다. 그의 아내는 비탄에 젖어 절규합니다.

 

주택 할부금은 다 갚았는데 이제 살 사람이 없네...”

 

  집은 결과로만 본다면 이렇듯 허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은 자신의 영혼이 거주하는 존재의 거처일 수도 있습니다. 릴케(Rilke, R. M.)가을 날에서는 영혼의 안식을 집으로 표현합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집은 자신과 가족이 세상에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공표하는 실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인들은 집의 규모나 호사비루함을 막론하고 당호(堂號)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호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현대의 소시민들은 당호를 짓지 않지만 모든 집은 그 형태와 규모를 불문하고 거주자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고시원, 지하 단칸방, 원룸은 우리에게 빈곤의 상징으로, 아파트 등은 규격화된 몰개성 등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거주자들이 그 집에 부여하는 의미는 세간의 인식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옥탑방은 비좁고 누추해도 그 곳에 달빛이 가득 찰 때 거주자가 느끼는 의미와 심리학적 반응은 다를 수 있습니다

 

  집은 질적연구의 새로운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 화폐적 가치, 신분의 상징을 떠나 가족들의 이야기, 주택을 마련하는 과정에서의 가족 협력, 고생담 등에는 개인과 사회의 의미가 담겨있고 라이프 스타일이 담겨져 있습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Giddens, A)는 사회과학의 탈근대 이후의 핵심 주제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위험사회 속에서 개인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정체성이 현대 정치의 위기를 뛰어넘어 생활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주택에 담긴 개인들의 이야기를 사회적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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